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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지기 두 친구가 있었다. 플로리다 팜비치와 뉴욕 맨해튼을 오가던 둘의 공통점은 '돈'과 '여자'였다. 맨해튼 어퍼이스트사이드에 있는 제프리 엡스타인의 저택에는 호화로운 저녁식사가 있었고, 도널드 트럼프의 개인 클럽과 마라라고 거주지에는 치어리더와 모델들이 함께했다. 뉴욕과 플로리다 사이는 엡스타인의 개인 제트기가 그들을 실어 날렸다. 



7월23일 뉴욕시 타임스스퀘어에 있는 광고판에 제프리 엡스타인 사건과 관련된 파일 공개를 촉구하는 광고가 떠있다. ⓒAFP 연합


위기의 트럼프, 오바마 때리며 국면 전환 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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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와 엡스타인은 2004년경 사이가 틀어진 후 크게 다른 길을 걸었다. 한 명은 감옥과 자살로, 다른 한 명은 더 큰 유명인이 되어 백악관을 향해 나아갔다. 하지만 그 둘의 나쁜 우정은 산 자와 죽은 자를 갈라놓지 않았다. 미국의 대통령직을 두 번째 맡고 있는 현재까지도 엡스타인은 떼려야 뗄 수 없는 트럼프의 아킬레스건이 되어있기 때문이외환투자
다.
이번에 터진 엡스타인 스캔들은 트럼프 취임 6개월, 스스로 한창 승리의 기쁨에 젖어있을 때였다. 감세안을 통과시키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많은 국방비를 지출하게 하며 가장 존경받는 나라로 만들었다고 자화자찬에 취해 있을 때 떨어진 날벼락인 셈이다. 자신의 치적을 한껏 자랑하며 미국이 똘똘 뭉쳐야 하는데 '마가(MAGA·연봉일억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지지층과 자신의 진영에서조차 의심의 눈초리가 거세지자 트럼프는 지금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트럼프의 주특기가 또 나왔다. 이번 파고를 넘기 위해 시종일관 우려먹던 '관세'로 다시금 국면 전환을 하겠다는 '물타기 전략'이다. 무리한 관세전쟁을 기어코 관철시키고 마는 끈기로, 마가 진영과 다시 똘똘 뭉치는온라인 손오공 릴게임
것. 결과는 꽤 성공적으로 보인다. 우방국에도 예외 없이 독한 모습으로 천문학적인 투자와 구매 조건을 얻어내는 대신 관세율을 낮춰줬다. 그렇다고 트럼프가 엡스타인 위기를 극복해 사면초가 처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트럼프가 엡스타인 스캔들에 특히 민감한 데는 '엡스타인 리스트' 의혹 연루설 때문이다. 엡스타인은 수십 명의 미성년자 등을전문가방송
포함한 여성을 상대로 성범죄를 저지르다가, 체포 후 2019년 감옥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인물이다. 이후 엡스타인 성 접대 리스트가 존재해 이를 무마시키기 위해 타살됐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트럼프 또한 엡스타인과 비슷한 의혹이 꾸준히 제기됐지만 공식적인 수사 대상에선 늘 벗어났다. 심지어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엡스타인 수사 파일을 공개하겠다고 공언까지 했는데 결국 증거가 없다고 입장을 바꿔 논란을 빚었다. 엡스타인 명단을 공개하겠다고 했다가 번복하면서 사건에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된 것이다. 
엡스타인 논란에 불을 다시 지핀 건 7월17일(현지시간) 나온 월스트리트저널(WSJ)의 보도였다. WSJ는 2003년 엡스타인의 50번째 생일을 맞아 지인들로부터 받은 메시지를 모은 생일축하 앨범을 단독 입수했다고 전했다. 메시지 중 하나가 트럼프의 이름이 적힌 편지였다. 트럼프 편지에는 여성 나체의 윤곽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삽화와 함께 "우리에겐 공통점이 많지, 제프리" "매일이 또 다른 멋진 비밀이 되기를 바란다"는 등의 문구가 담겨있었다. 또한 '도널드(Donald)'라는 서명이 포함돼 있었는데 신문은 서명이 트럼프의 것으로 보이고, 스타일도 유사하다고 분석했다.
트럼프는 곧바로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식으로 반격에 나섰다. 보도 직후 트럼프는 "허위사실 유포이자 명예훼손"이라며 신문과 담당 기자를 상대로 100억 달러(약 14조원) 규모의 소송을 제기했다. 이후 그는 예정됐던 스코틀랜드 순방에 WSJ 소속 기자들의 전용기 탑승을 전면 배제했다. 백악관은 허위, 명예훼손 행위를 이유로 들었지만 비판 언론에 대한 보복 조치라는 점은 명백했다.
"트럼프, '엡스타인 파일' 숨기고 있다" 69%
설상가상으로 뉴욕타임스(NYT)도 특종에 나섰다. NYT는 엡스타인 사건 피해자 중 한 명인 마리아 파머가 1996년과 2006년 FBI 수사에서 과거 트럼프와 마주친 경험을 밝히며, 트럼프를 포함해 엡스타인과 연루된 다른 인사들을 조사할 것을 촉구했다고 보도했다. CNN방송 또한 1993년 트럼프와 두 번째 부인 말라 메이플스의 결혼식에 엡스타인이 하객으로 참석한 모습이 담긴 복수의 사진을 확보해 보도했다. 뉴욕 플라자호텔에서 진행된 이 결혼식에 엡스타인이 참석했다는 사실이 확인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또 같은 해 뉴욕에서 열린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 행사에 동반 참석한 사진도 공개했다. 물론 트럼프는 관련 사진에 대한 취재진 통화에서 "가짜뉴스"라고 쏘아붙인 후 전화를 끊었다고 한다. 
잇단 보도가 트럼프를 옥죄는 탓일까. 트럼프는 엡스타인 국면 전환에 열을 올리면서 무리수를 두는 모습이 계속 포착되고 있다. 2016년 대선 당시 오바마 전 대통령이 정치 공작에 나섰다는 주장에 이어 유족과 민권단체 반대에도 킹 목사 암살 사건과 관련된 FBI 기록 공개를 강행했다. AP통신은 "킹 목사 관련 기록 공개가 1월 행정명령에 따른 것이긴 하지만 공개 시기 측면에서 모종의 다른 속내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며 "엡스타인과 관련한 자료 은폐 의혹에 대한 트럼프 지지층의 분노를 완화하려는 시도일 수 있다"고 해석했다. 앞서 트럼프는 FBI의 엡스타인 사건 관련 발표로 논란이 다시 커지기 시작하던 때, 인공지능(AI) 기술로 조작된 '오바마 체포 영상'을 자신의 SNS에 공유해 논란을 키웠다. NYT는 "이 같은 조작 영상을 게시한 배경에 엡스타인 스캔들에서 트럼프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여론의 초점을 민주당 인사들로 전환하려는 의도가 깔려있다"고 분석했다.
그간 요리조리 잘 피해 갔던 트럼프를 이제는 국민이 눈을 치켜뜨고 지켜보고 있다는 점도 그를 불안케 하는 요소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엡스타인 의혹을 은폐하고 있다는 응답이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난 것이다. 로이터통신과 입소스가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69%는 트럼프 정부가 엡스타인의 고객 명단에 관한 세부 사항을 숨기고 있다고 밝혔으며, 반대 의견은 6%에 불과했다. CBS방송과 유고브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89%가 '법무부가 해당 의혹에 대한 모든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고 답했다. 75%는 '이 사안을 다루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방식이 불만족스럽다'고 했다. 오죽하면 트럼프 행정부 지지율이 급락하면서 '죽은 엡스타인이 산 트럼프를 잡고 있다'는 논평이 나올까.